믿음(이만)의 필수요소는 6개입니다.

믿음(이만)의 필수요소는 6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 :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시다는 것과, 주님으로서의 하나님(루부비야)과 경배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울루히야)과 그분의 이름과 속성에 대해 굳게 믿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네가지 사항에 관하여 차례대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본성 :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본성이며 이러한 믿음을 끄집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종교가 다르고 사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이 존재함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순간이나 재앙이 닥쳤을 때 우리가 그분께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아에 심어주신, 믿는 자로서의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이러한 본성을 지우고 잊어버리려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자의 기도가 들어지고 요청하는 자가 원하는 것을 받으며 압박받는 자의 기도가 들어지는 경우를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존재하고 계시다는 확실한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증거는 수없이 많겠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 모든 이들의 상식은, 발생한 일은 그 발생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우리가 보는 주변의 피조물들 역시 같은 이유로 그것을 창조한 창조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자는 바로 위대하신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그것을 창조한 창조자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을 스스로 창조할 수 없는 것처럼 이 피조물들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창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아니면 무(無)가 그들을 창조했던가 아니면 그들이 창조자란 말인가?”(꾸란 제 52장 35절) 이 꾸란 구절의 뜻은 : 그들은 창조자 없이 창조되지 않았으며 그들은 자기 자신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창조한 창조자의 존재는 필수이며, 그 존재는 바로 축복가득하고 지고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 그리고 하늘과 땅, 별과 나무 등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우주의 시스템은 그것을 창조한 하나의 창조자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자는 바로 지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완벽히 하신 하나님의 일이라.” (꾸란 제 27장 88절)

예를 들어 우리가 보는 별들과 행성들은 결코 변경되지 않는 확고한 시스템을 따라 움직이며 모든 별들에게는 궤도가 있어 그 별은 절대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태양이 달을 따라잡는 것은 합당하지 않으며 밤이 낮을 추월하는 것도 합당하지 않노라. 그리고 모두는 궤도를 따라 유영하노라.”(꾸란 제 36장 40절)

깊이 관찰하고 숙고하는 자라면 우리 인간의 존재 자체야말로 하나님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성과, 작은 것도 감지하는 오감을 주셨고 신체 시스템의 완벽함을 선사하셨으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지에는 굳건히 믿는 자를 위한 징표가 있도다. 그대들 자신에게도 징표가 있으니, 그대들은 보지 않겠는가?”(꾸란 제 51장 20~21절)


 

하나님의 루부비야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즉,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주님(랍브)이시며 모든 것의 소유주이자 창조주이며 양식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라는 굳은 믿음과 신념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살리시고 숨을 거두어가시며 유용함과 해악 등 모든 것은 그분의 일이며, 그분의 손에 선(善)이 있으며,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그분과 대등한 존재는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신념은, 하나님의 행위는 그 무엇과도 비길 데 없는 유일무이한 속성을 지님을 믿는 것이며 이는 다음과 같은 신조를 포함합니다 :


하나님 한분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며 그분 이외의 창조자는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시라.” (꾸란 제39장 62절)

사람의 창작물과 관련해서는, 그것은 단지 기존에 존재하는 사물의 속성 변경, 조합 혹은 조립일 뿐이며 그것을 진정한 창조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도 아니며 죽음 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에 양식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며 그분 이외에는 양식의 제공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대지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양식이 있노라.”(꾸란 제 11장 6절)


그리고 그분께서는 모든 것의 소유주이시며 그분 이외에는 진정한 소유주가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찬미받으실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노라.” (꾸란 제 5장 120절)


그리고 그분께서는 모든 일을 결정짓는 분이시며 최종 결정자는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에서부터 대지로 일을 결정지으시며”(꾸란 제 32장 5절)

삶과 처해진 환경에 관한 인간의 의사결정과 조율은 인간의 제한된 능력과 한계 내에서 수행되기에 제한적이고 결점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의사결정으로 이익을 거둘 수도 있지만 손실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고하시고 찬미받으실 창조주의 결정이란 그 어떤 것도 빠져나갈 수 없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그분의 결정은 반드시 실행되며 그 무엇도 그분의 결정을 바꾸거나 그분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창조와 일의 결정은 그분의 소유가 아니던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축복이 가득하도다.”(꾸란 제 7장 54절)



“대지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양식이 있노라.”(꾸란 제 11장 6절)


하나님의 사도 시절의 우상 숭배자들조차도 주님으로서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시절의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소유주이시며 일의 최종 결정자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믿음이 그들의 이슬람 입교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그들에게 하늘들과 땅을 창조한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진실로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꾸란 제 31장 25절)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라는 사실, 즉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소유하고 계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총으로써 우리에게 양식을 제공하신다는 것을 믿는 자는 자연스레 하나님 한분께만 자신의 경배 행위를 바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일의 최종 결정자이시며 살리시고 숨을 거두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자가 자신의 경배행위를 다른 존재로 돌린다면 이것은 가장 비판받을 부당행위이며 가장 커다란 죄악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현자 ‘루끄만’은 그의 아들에게 조언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 내 아들아!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지 말라.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는 실로 엄청난 부당행위라”(꾸란 제 31장 13절)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커다란 죄가 무엇인지 질문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가 가장 커다란 죄라.” ( ‘알-부카리’(no.420)와 ‘무슬림’(no.86)이 수집한 하디쓰)

하나님의 루부비야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줍니다.

루부비야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줍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하나님 그분께서 우리를 소유하고 계시며 그분께서 원하는 대로 그분의 지혜에 걸맞게 일을 조율하시며, 그분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시며, 그분 이외의 모든 것은 창조된 피조물이고 창조주 앞에서 가난할 뿐이며 그분의 도움을 필요로 함을 확신할 때, 그리고 모든 일은 그분의 손에 달려있으며 그분 이외에는 창조자가 없으며 그분 이외에 양식을 제공하는 자가 없으며 오직 그분 한분만이 일을 결정하시는 분이며, 그 어떤 작은 생명체도 그분의 허락이 있을 때만 움직이며, 그분의 결정이 있을 때만 멈춘다는 것을 확신할 때,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 한분에게로만 향할 것이며 그분께만 구하고 요청하며 삶의 전반에 있어 그분께만 의탁하며 우리 앞에 전개되는 삶을 열심히 그리고 용감히, 평안함과 결의와 확고부동함으로써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삶에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내바쳤기에 우리는 다른 이의 손에 있는 것을 보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모든 일의 향배는, 원하시는 대로 선택하시고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드러나는 혹은 드러나지 않는 모든 종류의 경배 행위를 받으실 권리는 오직 하나님 한분께만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기도, 두려움, 의탁, 요청, 예배, 의무희사금(자카), 단식 등의 경배 행위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이외에는 진정으로 경배 받을 존재가 없으며 부처도, 예수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들이 경배해야 할 존재는 오직 한분이라. 가장 자비로우시고 가장 자애로우신 그분 이외에는 경배 받을 존재가 없노라.”(꾸란 제 2장 163절)

하나님께서는 이 꾸란 구절을 통해, 경배 받을 존재는 하나님 한분이시며 그분 이외의 존재를 경배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는 것이 ‘라 일라하 일랄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


하나님의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측면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

1

그것은 ‘진’과 인간이 창조된 이유입니다. 그들 모두는, 대등한 존재가 없는 하나님만을 경배하기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과 인간을 창조한 것은 오직 그들이 나를 경배토록 하기 위함이라”(꾸란 제 51장 56절)

2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은 사도들(그들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 보내지고 성서가 계시된 이유입니다. 우리는 사도와 성서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 한분만이 경배 받을 권리를 가지시며 하나님 이외의 경배받는 존재를 불신해야 함을 잘 알게 됩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실로 나는 모든 공동체에 사도를 보내었도다. (사도가 말하길) ‘그대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우상을 멀리하라’”(꾸란 제 16장 36절)

3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게 가장 먼저 의무화된 사항입니다.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는 사람들을 이슬람으로 초대하기 위해 ‘무아드 븐 자발’을 예맨으로 보냈고, 이 때 그에게 건낸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대는 성서의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 그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이외에는 경배 받을 존재가 없다’는 증언으로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라’ (‘알-부카리’(no.1389)와 ‘무슬림’(no.19) 이 수집한 하디쓰) 

즉, 모든 경배 행위는 오직 하나님 한분께만 바쳐야 한다고 그들에게 알리라는 것입니다.

4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은 ‘라 일라하 일랄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일라’는 경배의 대상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진정으로 경배 받을 존재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 이외의 그 어떤 존재도 우리의 경배행위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5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이 창조주이고 소유주이며 일의 최종 결정자라는 믿음에 대한 논리적 귀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서인 꾸란을 통해 확증하셨거나 그분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를 통해 확증하신, 그분의 위엄에 걸맞는 그분의 이름과 속성을 믿는 것입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는 가장 훌륭한 이름과 가장 완벽한 속성이 있으며 그 어떤 것도 그분과 유사한 이름과 속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과 비슷한 것이란 없노라.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을 들으시는 분이시고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시라.”(꾸란 제 42장 11절) 즉 하나님께서는 이 구절을 통해, 그 어떤 피조물도 그분의 이름이나 속성과 유사한 것을 지닐 수 없음을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지고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습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자비로우신 분이시며 가장 자애로우신 분” ( 꾸란 제 1장 3절)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분은 모든 것을 들으시는 분이시고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시라” (꾸란 제 42장 11절)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가장 존엄하신 분이시며 가장 현명하신 분이시라”(꾸란 제 31장 9절)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하나님, 그분 이외에는 경배 받을 존재가 없노라. 살아계신 분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꾸란 제 2장 255절)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한한 감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있도다.” (꾸란 제 1장 2절)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 :


1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며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강해집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을 아는 자는 그의 마음이, 지고하시고 찬미받으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과 겸허함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이름들로써 그분을 칭송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가장 좋은 디크르(하나님 기억하기) 방식 중의 하나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 믿는 자들이여! 하나님을 많이 기억하라” (꾸란 제 33장 41절)

3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으로써 하나님께 요청드리고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가장 훌륭한 이름들이 있으니 그대들은 그것으로써 그분께 기도하라. ”(꾸란 제 7장 180절)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오, 양식을 제공하시는 분이시여! 저에게 양식을 베풀어 주십시오. 오, 용서하시는 분이시여!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 가장 자애로우신 분이시여! 저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경배 행위란 무엇인가?


경배 행위란 :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행위의 총칭으로, 그분께서 인간에게 명령하시거나 권장하신 말과 행동 등이 포함됩니다. 경배 행위는 예배나 의무희사금(자카)이나 성지순례(핫즈)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도 있고,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에 대한 의탁과 도움 요청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행위도 있습니다.



경배 행위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천됩니다 :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의도가 동반된다면 믿는 자의 모든 행동이 경배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슬람에서는, 널리 알려진 의식 예를 들어 예배나 단식만이 경배 행위로 한정되지는 않으며 좋은 의도와 선한 목적으로 행한 모든 유용한 행위가 경배 행위로 승화되며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보상을 얻게 됩니다. 예를 들어 먹거나 마시거나 잘 때조차도,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하여 더 많은 경배 행위를 하기 위한 의도를 가졌다면 우리는 그 행위로 보상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무슬림의 삶의 전부가 온전히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잘 복종하기 위해 몸을 건강히 할 의도로 음식을 먹었다면 그것은 경배행위이며, 이성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의도로 결혼을 하였다면 결혼은 경배행위가 되며, 자영업이나 직장생활, 그로 인한 소득 역시 좋은 의도를 통해 경배행위로 승화됩니다. 지식을 쌓고 학위를 취득하고 레포트를 작성하고 연구하고 발명하는 것도 경배행위이며 아내가 남편과 자식을 배려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도 경배행위입니다. 이렇듯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실천되는 그 어떤 행위도, 건전한 의도와 좋은 목적이 동반되었을 때 경배행위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실천한 모든 행위는 경배 행위로 인정되며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보상을 받습니다.



경배 행위는 우리가 창조된 이유입니다 :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과 인간을 창조한 것은 오직 그들이 나를 경배토록 하기 위함이라. 내가 그들로부터 양식을 원하는 것도 아니며 그들이 나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길 원하는 것도 아니라. 실로 하나님 그분이야말로 양식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며 힘을 가지신 가장 강력하신 분이라 ” (꾸란 제 51장 56~58절)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과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분을 경배토록 하기 위함이라고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배 행위가 필요치 않으신 분이시며 다만 우리가 그분에 대한 경배 행위가 필요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요청을 구하는 가난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인간이 이러한 창조 목적을 저버리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우리 존재 이유에 대해 숙고하지 않은 채 현세의 향락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다른 피조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추락하고 맙니다. 동물 역시 먹고 마시고 목적 없이 살아가니까요. 그러나 동물은 내세에서 심판받지 않을지언정 우리는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은 향락을 추구하며 그들이 먹되 마치 가축이 먹는 것과 같으니 불(지옥)이 그들을 위한 거처라. ”(꾸란 제 47장 12절) 이처럼 꾸란은 불신자들의 행동과 목적을 동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단지 둘의 차이점이라면 불신자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어 이해하고 사고할 줄 알기에 자신의 행위에 댓가를 치러야 하며 동물은 반대로 이성이 없기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배 행위의 기둥 :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경배 행위는 두 가지 기둥(필수 요소)가 떠받치고 있습니다 :

첫째 기둥 :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겸허함과 두려움

둘째 기둥 :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사랑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경배 행위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겸허함과 그분께 대한 복종과 두려움이 전제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분에 대한 사랑과 그분에게로의 희망과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두려움과 겸허함이 없는 사랑은 마치 음식이나 재산에 대한 사랑과 같기에 경배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는 두려움은 맹수나 폭군에 대한 두려움과 같기에 역시 경배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에 두려움과 사랑이 공존할 때만이 진정한 경배 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배 행위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경배 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하나님만을 위한 진실성과 순나와의 부합성입니다.



경배 행위의 선결 조건 :



  • 경배 행위가 성립되고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다음 두 가지 선결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
    • 1

      이 경배 행위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위한 것이라는 진실성

    • 2

      이 경배 행위가 선지자의 순나(그의 행위와 말씀)에 부합하고 일치할 것

이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노라.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얼굴을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그의 주님으로부터의 보상이 있을 것이며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은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라.”(꾸란 제 2장 112절)
‘자신의 얼굴을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것은 :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고 진실되게 경배 행위에 임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의미는 : 하나님의 법률과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가져온 것을 따르는 자를 의미합니다.



순나(선지자의 행위와 말씀)와의 부합성은 단지 ‘순수한’ 경배 행위 - 예를 들어 예배, 단식, 디크르(하나님 기억하기)- 의 선결 조건일 뿐입니다. 만약 특정 경배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의 보상을 얻고자 하는 좋은 의도로써, 자연스러운 일상 행위를 통해 실천되는 것이라면 – 예를 들어 경배 행위에 필요한 힘을 기르기 위한 의도로써 하는 운동이나, 배우자와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임하는 경제 활동- 순나와의 부합성은 더 이상 선결 조건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행위가 금지사항(하람) 이 아닌 것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쉬르크’


  • ‘쉬르크’(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는 경배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울루히야)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과 오직 하나님 한분께만 바치는 경배 행위가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의무 사항이라면 쉬르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커다란 거역행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쉬르크는 참회가 없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하는 유일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를 용서치 않으시노라. 그러나 그 이외의 죄에 대해서는 그분께서 원하는 자에게 용서를 베푸시노라.”(꾸란 제 4장 48절)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죄가 가장 커다란 죄인지 질문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가 가장 커다란 죄라.” ( ‘알-부카리’(no.420)와 ‘무슬림’(no.86)이 수집한 하디쓰)
  • 쉬르크는 경배 행위를 썩게 만들며 결국 그 경배 행위는 무효가 되어버립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둔다면 실로 그들이 실천하던 행위는 그들에게 쓸모없게 되어버릴 것이라.”(꾸란 제 6장 88절)

    그리고 쉬르크를 저지른 자는 불지옥에 영원히 거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국을 금하셨으며 그의 거주지는 불(지옥)이 될 것이라. ”(꾸란 제 5장 72절)



쉬르크는 작은 쉬크르(쉬르크 아쓰가르)와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 이렇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1.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 :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경배 행위를 바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말이나 행동을 그분께만 바친다면 그것은 타우히드(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는 것)가 되고 믿음(이만)이 되는 것이며, 그것을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바친다면 그것은 쉬르크가 되고 불신이 되는 것입니다.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의 예는 :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거나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의탁하며 기대는 것,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들의 주님께서 말씀하셨도다. ‘나에게 기도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들에게 응답해줄 것이라’” (꾸란 제 40장 60절)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믿는 자들이라면 하나님께 의탁하라.”(꾸란 제 5장 23절)

    또한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대들은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고 경배하라”(꾸란 제 53장 62절)

    따라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바친다면 그는 우상숭배자이자 불신자인 것입니다.

  2. 작은 쉬르크(쉬르크 아쓰가르) :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를 저지르는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말과 행동을 뜻합니다.

    예시 : ‘리야’(남에게 보이기 위한 경배 행위). 예를 들어 남이 보고 있기에 더 오랫동안 예배를 드리는 행위,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아름답게 꾸란을 낭송하거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디크르)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 등은 모두 리야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쉬르크 아쓰가르’이라.” 사람들이 묻길 “오, 하나님의 사도시여. ‘쉬르크 아쓰가르’가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하시길 “그것은 ‘리야’이라.” (‘아흐마드’가 수집한 하디쓰, no.23630)

    이와는 달리, 경배 행위의 목적이 오직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며,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예배를 드리지도 않고 단식도 하지도 않는다면 이러한 행위는 ‘무나피끄’(위선자)의 행위입니다. 이는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에 해당하며 그는 더 이상 무슬림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는 쉬르크인가?



이슬람은 미신과 거짓으로부터 인간 이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대한 복종을 철폐하기 위해 도래한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나 돌이나 조각상 등에 대한 기도나 복종은 미신이자 쉬크르(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로서, 허락되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도와줄 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물에 빠져 익사 직전에 있을 때 도와달라고 요청하거나,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행위는 허락됩니다.


  • 도움 요청의 대상이 죽은 자나 움직이지 못하는 고체 덩어리인가요?
    • 이는 쉬르크로서 이슬람과 믿음(이만)에 배치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나 고체 덩어리는 요청을 들을 수도 없고, 듣는다고 해도 대답해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경배 행위이며 따라서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기도하는 것은 쉬르크입니다. 이슬람이 시작될 당시의 아랍 사람들이 저지르던 쉬르크는 돌이나 죽은 자에 대해 기도하고 요청하던 행위였습니다.

    • 아니오

      : 말과 요청을 들을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당신의 요청에 응답해줄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요? 즉, 당신이 도와달라고 요청한 사항에 대해 그가 도와줄 능력이 있나요?

      • 이러한 요청은 괜찮은 것이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사람들과의 교류의 한 부분이며 일상적인 인간관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 아니오

        인간의 능력 밖의 일에 대해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 예를 들어 불임의 여성이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이며 이슬람에 배치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대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도와줄 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교류에 해당하며 일상적인 인간관계로서, 허락되는 사항입니다.


가장 높은 단계의 믿음(이만)


가장 높은 단계의 믿음(이만) :


믿음(이만)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슬림이 하나님을 잊거나 죄를 지으면 믿음(이만)은 줄어들며 그분에 대한 복종과 경배 행위와 경외심을 증가시키면 믿음(이만)이 높아집니다.

이슬람법에서 말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믿음은 ‘이흐산’입니다.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는 ‘이흐산’을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신 바 있습니다. “그대가 마치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라. 만약 그대가 그분을 보지 못한다면 그분께서는 그대를 지켜보고 계시노라.” (‘알-부카리’(no.50)와 ‘무슬림(no.8)이 수집한 하디쓰)

따라서 우리는 앉아 있을 때나 서 있을 때도, 진지할 때나 농담을 건낼 때도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응시하고 계시니 우리는 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심을 잘 알기에 두려움이나 자포자기의 심정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기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며, 우리가 감추는 것과 드러내는 모든 것을 그분께서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자아가 죄를 짓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만약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대도 우리는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니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하나님께서는, 고난이 닥쳤을 때 믿는 자를 지켜주시고 시련이 다가왔을 때 믿는 자를 구해주시며 적의를 가진 자들의 계략으로부터 믿는 자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변호하여 주시노라.” (꾸란 제 22장 38절)

2

믿음(이만)은 행복한 삶과 기쁨의 원인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믿는 자로서 선행을 실천하는 자, 실로 나는 그에게 행복한 삶을 선사할 것이라”(꾸란 제 16장 97절)

3

믿음(이만)은 모든 종류의 미신으로부터 자아를 정화시키기에, 진실되게 하나님을 믿는 자는 자신의 모든 일의 귀결을 오직 하나님 한분께 돌립니다. 그분이야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시며 경배 받을 권리를 가지시는 유일하신 분이시니 그는 피조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에 그는 모든 미신과 허위 믿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4

믿음(이만)의 가장 위대한 결과물은 : 하나님의 기쁨과 천국으로의 입성, 그리고 그곳에서의 영원한 즐거움입니다.




천사들에 대한 믿음



천사들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천사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믿음과, 그들은 인간과 ‘진’의 영역이 아닌 보이지 않는 다른 영역에 있으며, 그들은 명예로우며 경외심으로 충만하고, 진실되게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그분께서 명령한 사항을 빠짐없이 수행하며, 결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노라. (천사들은) 명예로운 종복들이라. 그들은 그분의 말씀에 앞서 말하지 않으며 그들은 그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노라.”(꾸란 제 21장 26-27절)

천사들에 대한 믿음은 여섯가지 믿음의 필수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는 그의 주님으로부터 그에게 내려진 것을 믿으며 믿는 자들도 그러하도다. 모두는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과 그분의 성서들과 그분의 사도들을 믿더라.”(꾸란 제 2장 285절)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는 믿음(이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과, 그분의 성서들과, 그분의 사도들과, 최후의 날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운명을 믿는 것이라.” (‘ 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8)



천사들에 대한 믿음은 무엇을 내포하는 가?



1

천사들이 존재함을 믿는 것입니다 : 그들은 하 나님의 피조물이며 비유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 고 있으며, 그들은 빛으로부터 창조되었고, 그 들의 본성은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복종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2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천사(예를 들어 ‘지 브릴’(가브리엘))와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지 지 않는 천사 모두를 믿는 것입니다.

3

우리에게 알려진 그들의 속성을 믿는 것입니 다. 예를 들면 : 


•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으며, 피조물이며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으로서의 속성(루부비야)이나 경배 대상으로서의 속성(울루히야)이 없으며, 반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종복이며 하나님께 철저히 복종하는 존재입니다. 찬미받으실 하나님께서 그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으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명령한 것을 거역하지 않으며 그들은 명령받은 것을 수행하노라. ”(꾸란 제 66장 6절)


• 그들은 빛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선지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들은 빛으로부터 창조되었노라.”(‘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2996)


• 그들에게는 날개가 있습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듯이, 그분께서는 천사에게 날개를 두셨고 날개의 숫자는 천사들마다 다르게 하셨습니다. 완벽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찬미받으실 하나님이시라.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신 분. 천사들을 사도로 임명하시고 그들에게 두 개, 세 개, 네 개의 날개를 두신 분. 그분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창조를 더하시노라. 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전능하신 분이시라.”(꾸란 제 35장 1절)


4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그들의 임무를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 


•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를 사도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가 있으니, 그는 ‘지브 릴’(가브리엘) 천사(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입니다.


• 영혼을 거두어가는 임무를 맡은 천사들로는 ‘죽음의 천사’와 그를 도와주는 천사들 이 있습니다.


• 우리의 선행과 악행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천사들은 ‘명예로운 기록자’(알-키라무 알카티분)라고 불립니다.



천사들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 :


천사들에 대한 믿음은 믿는 자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 결과물의 일부를 소개하면 :

1

하나님의 위엄하심과 그분의 힘과 완벽 한 능력에 대해 잘 알게 됩니다. 피조물 의 명예는 창조자의 위엄에 비롯되는 것이며 따라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전 능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위엄을 드높 이게 됩니다. 빛으로부터 천사를 창조 하고 날개를 두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 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 굳건히 그리고 꾸준히 복종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우리의 행위 모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 복종함에 인내하게 되며 포근함과 고요함을 느낄 것입니다. 믿는 자는 이 넓은 세상에서 항상 자신과 함께 하는,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수 천명의 천사가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4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에 감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 모두에게 천사를 두셨기 때문입니다.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길, 하늘들은 그 안에 있는 존재들로 무거우니, 서있거나 반절을 하고 있거나 엎드려 절하고 있는 천사들로 가득차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서들에 대한 믿음



성서들에 대한 믿음이 내포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복을 위해 그분의 사도들에게 성서들을 계시하셨고, 이 성서들은 지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성서를 통해 그분께서는 그분의 위엄에 걸맞게 실제로 말씀을 하신 것이며, 이 성서들 안에는 인류를 위한 진리와 빛과 인도가 있다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성서들에 대한 믿음은 믿음(이만)의 여러 필수요소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 믿는자들이여!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와, 그분께서 그분의 사도에게 내리신 성서와, 그분께서 이전에 내리신 성서를 믿으라.”( 꾸란 제 4장 136절)

즉, 하나님께서는 그분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사도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분의 사도인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계시하신 성서, 즉 꾸란에 대한 믿음, 그리고 꾸란 이전에 계시된 성서에 대한 믿음을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는 믿음(이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과, 그분의 성서들과, 그분의 사도들과, 최후의 날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운명을 믿는 것이라.” (‘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8)

꾸란의 필기법은 완벽을 추구하는 원칙과 자세함으로 유명합니다.




성서들에 대한 믿음은 무엇을 내 포하는가?



1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 성서들을 계 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

2

그 성서들은 찬미받으시고 지고하 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것.

3

하나님께서 이름을 언급하신 성서 를 믿는 것, 예를 들어 꾸란은 우리 의 선지자인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 게 계시된 성서이며, ‘타우라’(모세 오경)의 원본은 ‘무사’(모세, 그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에게 계 시된 성서이며, ‘인질’(복음서)의 원 본은 ‘이사’(예수, 그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에게 계시된 성서 임을 믿는 것.

4

꾸란과 순나를 통해 전승된, 성서들 와 관련된 정보를 믿는 것.





다른 성서와는 구별되는 꾸란만의 특별한 속성 :



꾸란은 우리의 선지자인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계시된, 지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는 자는 꾸란의 위엄을 드높입니다. 그리고 꾸란에 제시된 여러 규정을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꾸란을 낭송하며 그 의미를 숙고합니다.

이 꾸란은 현세에서 우리의 길잡이이며 내세에서 우리가 성공하는 원인이 됩니다.


꾸란에는 여러 특징이 있으며, 다른 기존의 성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꾸란만의 독특한 속성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꾸란에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최종의 규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존 성서를 지지하고 확증하는 것이며, 그 중에는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지고하신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대에게 진실로써 성서를 내렸으니 그 이전의 성서를 확증하며 증언하는 것이라.”(꾸란 제 5장 48절)

‘그 이전의 성서를 확증하며’의 뜻은 : 이전 성서들의 여러 신조 및 정보와 일치한다는 것이며 ‘증언하는 것’의 뜻은 : 기존 성서들의 기초가 되며 증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2

꾸란은 언어와 종족을 초월한 모든 인류가 믿고 따라야 할 성서입니다. 이는, 꾸란이 계시된 이후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기존의 성서들은 특정 시대의 특정 민족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함마드)에게 이 꾸란이 계시되었으니 그것으로써 그대들과, 그것(꾸란)이 전달된 자들에게 내가 경고하기 위해서라.”(꾸란 제 6장 19절)

3

실로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꾸란을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으니 그 어떤 누구도 변형의 의도로 꾸란에 손을 뻗지 못합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진실로 나는 꾸란을 내렸으며, 진실로 나는 그것을 보존할 것이라. “(꾸란 제 15장 9절) 따라서 꾸란에 포함된 모든 정보를 믿는 것은 우리의 의무 사항입니다.




꾸란과 관련된 우리의 의무 사항은 무엇인가?
  • 우리는 꾸란을 사랑하고 그 위엄을 드높이고 특별한 배려로써 꾸란을 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꾸란은 창조주의 말씀이며 가장 정직한 말씀이며 가장 훌륭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 또한 우리는 꾸란을 낭송하고 그 의미를 숙고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꾸란에 제시된 여러 교훈과 정보와 이야기를 음미해야 하며, 꾸란은 우리의 삶 속에서 진리와 허위를 구분하기 위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 또한 우리는 꾸란에 제시된 규정을 따라야 하며, 꾸란에 내려진 명령과 예절을 지켜야 하며, 꾸란을 우리 삶의 방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아이야’(선지자의 아내, 하나님께서 그녀를 기쁘게 여기시길)에게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의 성품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성품은 꾸란 그 자체였습니다.” (‘ 아흐마드’(no.24601) 와 ‘무슬림’(no.746)이 수집한 하디쓰)

이 하디쓰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는 그의 삶과 행동을 통해 꾸란에 제시된 규정과 법률을 있는 그대로 실천하셨고, 따라서 그(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꾸란의 인도를 따르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우리 모두의 모범입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도에게는 그대들을 위한 훌륭한 모범이 있으니,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바라고 하나님을 많이 기억하는 자를 위한 것이라”(꾸란 제 33장 21절)




기존 성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무엇인가?



무슬림은 ‘무사’(모세)(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에게 계시된 ‘타우라’(모세오경)의 원본과 ‘이사’(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에게 계시된 ‘인질’(복음서)의 원본이 하나님에게서 온 진리라고 믿습니다. 그 두 성서의 원본에는 하나님의 판결과 교훈과 이야기들이 있었으며, 현세의 삶과 내세를 위한 인도와 빛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꾸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길, 성서의 사람들(기독교인, 유대교인)은 그들의 성서를 변형하였고 첨가와 삭제를 가하였으며 따라서 그 성서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원본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구약의 모세오경은 하나님께서 ‘무사’(모세, 그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께서 계시하신 ‘타우라’(모세오경)의 원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원본을 변형하고 바꾸었으며, 원본에 제시된 많은 판결들을 그들의 취향대로 변경했기 때문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말씀의 위치를 변경하는 자들이 있으니”(꾸란 제 4장 46절)

마찬가지로 현재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신약의 복음서 역시 ‘이사’(예수, 그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에게 계시된 ‘ 인질’(복음서)의 원본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인질’을 변경하였고, ‘인질’의 많은 규정들을 바꾸었습니다. 지고하신그분께서 기독교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그들 중의 한 무리는 그들의 혀로써 성서를 왜곡하니 그대들은 그것이 성서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성서의 일부가 아니라. 그리고 그들이 말하길 ‘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들은 알면서도 하나님에 관해 거짓을 말하더라. ”(꾸란 제 3장 78절)

“나는, ’실로 우리는 기독교인이오’라고 말하는 자들로부터 성약을 맺었으나 그들은 그들이 받은 메시지의 대부분을 잊었도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 사이에 부활의 날까지 계속될 적의와 증오를 심었노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해오던 일을 그들에게 알려주실 것이라”(꾸란 제 5장 14절)

그렇기에 오늘날 기독교인과 유대인들 손에 쥐어져있는 소위 ‘성경’ 과 그 안의 ‘모세오경’ 과 ‘복음서’에는 그릇된 믿음과 허위 정보, 거짓 이야기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서가 제공하는 정보에 관해 우리는, 꾸란과 순나에 부합할 경우에만 그것을 진리로서 인정하며, 꾸란과 순나가 거짓으로 간주할 때는 우리가 그것을 거짓으로 간주하며, 해당 정보에 대해 꾸란과 순나가침묵할 때는 우리 역시 그것에 관해 진리다 거짓이다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무슬림은 이러한 기존 성서를 배려해야 하며 그것을 조롱거리로 삼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를 삼가야 합니다. 아주 조그마한 일부일지라도 성경에, 변경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슬림은 ‘타우라’(모세오경)와 ‘인질’(복음서)의 원본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후 두 책에는 많은 변형과 첨가가 있었고 따라서 현재 존재하는 ‘타우라’ 와 ‘인질’에 관해서 우리는, 꾸란과 순나에 부합되는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성서들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 :


그 결과물은 아주 많지만 중요한 것만을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절히 배려해주시고 그분의 자애로써 우리를 돌보아주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모든 민족에게 성서를 보내시어 그들이 인도받을 수 있도록 하셨고 현세와 내세에서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법률에 담긴 그분의 지혜를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모든 민족에게 그들의 환경과 민족성에 걸맞는 법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대들 중 모두에게 법률과 명백한 길을 두었으니”(꾸란 제 5장 48절)

3

성서들을 계시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성서들은 현세와 내세에서의 빛이며 인도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은총에 대해 특별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들에 대한 믿음



인류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필 요로 하는 이유 :



인류는 그들에게 법률을 설명해주고 그들을 진리로 인도해줄 하나님의 메시지를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영혼이며 빛이자 생명입니다. 영혼이 없고 생명이 없고 빛이 없다면 생명체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메시지를 ‘루흐’(영혼) 라고 칭하셨습니다. 영혼이 없으면 생명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마찬가지로 나는 그대에게 내 명령으로써 영혼(꾸란)을 계시하였노라. 그대는 성서가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못했노라. 그러나 나는 그것(꾸란)을 빛으로 두었고 그것으로써 내 종복 중 내가 원하는 자를 인도하노라.”( 꾸란 제 42장 52장)

이성은 일반적인 측면에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는 있지만 상세한 구분과 구체적 내용은 알아내지 못하며 경배 행위의 실천과 그 방법은 오직 계시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세와 내세에서의 행복과 성공은 오직 사도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좋고 나쁜 것의 상세한 정보는 그들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에 등을 돌리는 자는 불확실성에 방황할 것이며 그가 메시지를 거부하고 돌아설수록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믿음(이만)의 여러 필수요소 중의 하 나 :



사도들에 대한 믿음은 이만의 여섯가지 필수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는 그의 주님으로부터 그에게 내려진 것을 믿으며 믿는 자들도 그러하도다. 모두는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와 그분의 성서들과 그분의 사도들을 믿더라. (그들이 말하길)‘우리는 그분의 사도들 중 어떤 누구도 구분하지 않습니다.’ ”(꾸란 제 2장 285절)

위 꾸란 구절을 통해 우리는, 구분 없이 모든 사도들(하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을 믿는 것이 의무 사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대인과 기독교인과는 달리어떤 사도는 믿고 어떤 사도는 믿지 않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는 믿음(이만) 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과, 그분의 성서들과, 그분의 사도들과, 최후의 날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운명을 믿는 것이라.” (‘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8)





사도들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든 공동체마다 사도를 보내시어 당시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였고, 사도들 모두는 정직하고 진실만을 말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을 수 있는 자들이며, 인도의 길을 제시하는 인도받은 자들이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든 메시지를 빠짐없이 전달하였으며, 메시지를 숨기거나 변경하지 않았으며, 철자 하나조차도 임의로 추가하지나 삭제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니 사도들의 임무는 오직 명백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뿐이라.”(꾸란 제 16 장 35절)






사도들에 대한 믿음은 무엇을 내포하는가?



1

그들이 가지고 온 메시지는 진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이며, 사도들의 공통된 메시지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라는 것이었다는 믿음입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실로 나는 모든 공동체에 사도를 보내었도다. ( 사도가 말하길) ‘그대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우상을 멀리하라’”(꾸란 제 16장 36절)

그러나 선지자들의 법률은 세부적 사항에 있어서 서로 달랐으니, 당시 사람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그대들 중 모두에게 법률과 명백한 길을 두었으니” (꾸란 제 5장 48절)

2

모든 선지자와 사도를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름을 언급하신 선지자들 – 예를 들어 무함마드, ‘이브라힘’(아브라함), ‘ 무사’(모세), ‘이사’(예수), ‘누흐’( 노아)(하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 을 믿으며,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지자들 역시도 믿는 것입니다. 만약 한 선지자의 메시지를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모든 선지자를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

꾸란과 순나(선지자의 행위와 말씀) 에 언급되어 있는 사도들의 정보와 그들이 행한 기적을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홍해를 가른 ‘무사’(모세) (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의 기적을 믿는 것입니다.

4

우리에게 보내진 가장 훌륭한 사도이자 최후의 사도인 무함마드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가져온 이슬람법( 샤리아)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다음과 같은 속성을 지닙니다 :
1

그들 모두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들과 다른 이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와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 이전에 내가 보낸 사도는 모두 남자들로서 내가 그들에게 계시를 내리는 것이라. ”(꾸란 제 21장 7절)

따라서 그들에게는 주님으로서의 속성(루부비야)이나 경배 대상으로의 속성(울루히야) 이 없으며, 다만 그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신체를 소유하였고 가장 고결한 품성을 지녔습니다. 또한 그들은 가장 고귀한 혈통의 소유자이며 뛰어난 이성과 빼어난 웅변술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 겪을 고초와 선지자직을 수행함에 따르는 어려움을 잘 견디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러한 속성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를 보내심에 인간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를 통해 동일한 인간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사도를 따르고 그를 본보기로 삼는 것은 인간의 힘과 능력을 넘어서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2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그들을 선택하여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말하라(오, 무함마드여!). ‘단지 나는 그대들과 같은 인간일 뿐이며 나에게 계시가 내려지니 그대들이 경배할 존재는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이라.’”(꾸란 제 18장 110절)

따라서 선지자직과 사도직은 영혼의 순수함이나 영리함 등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며 이성으로써 도달되는 영역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인간들 중에 누군가를 선택하시어 그를 사도로 두시는 것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그분의 메시지를 두실지 가장 잘 아시노라.”(꾸란 제 6장 124절)

3 그들은 하나님과 관련된 사항을 전달함에 그 어떤 죄도 저지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림에 실수를 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계시를 실천함에 실수하지 않습니다.
4 그들의 속성 중의 하나는 정직함이니 사도들은(그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말과 행동에 있어 정직합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가장 자비로우신 분께서 약속하신 것이며 사도들은 진실을 말하였도다.”(꾸란 제 36장 52 절)
5 그들의 다른 속성은 인내심입니다. 사도들은 기쁜 소식의 전달자로서 또한 경고자로서 하나님의 종교로 사람들을 초대하였고 이 과정에서 그들은 해를 입고 여러 종류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드높이기 위한 과정을 인내하고 견뎌낸 것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도들 중 단호한 의지의 소유자들이 인내했던 것처럼 그대도 인내하라.”(꾸란 제 46장 35절)



사도들의 징표와 그들이 행한 기적 :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도들(그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을 다양한 방법으로 도와주시어 그들의 정직성과 선지자성을 널리 알리셨습니다. 그 예로는 사도들에게 주어진 기적과 그들이 가진 명백한 징표가 있으며, 이 모두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정직성과 선지자성을 사람들에게 재확인시키셨습니다.

기적이란 :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와 사도를 통해 드러내시는,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는 여러 일들로서 그 어떤 인간도 그와 비슷한 것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다음은 그 예시입니다 :

  • ‘무사’(모세)(그에게 평화가 깃들기 를)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것.
  • ‘이사’(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 를)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들이 집에 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남겨 보관하는지 알려준 것.
  • 우리의 선지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를 위해 달이 두쪽으로 갈라진 것.



‘이사’(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에 관한 무슬림의 믿음 :



1

그는 가장 위대한 사도들 중의 하나이며 단호한 의지를 가진 사도들(우룰 아즘) 중의 하나입니다. 사도들 중 단호한 의지의 소유자들은 5명으로 무함마드, ‘이브라힘’(아브라함), ‘누흐’(노아), ‘무사’(모세), ‘이사’(예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하나님께서는 꾸란 구절을 통해 다음과 같이 그들을 언급하셨습니다. “내가 선지자들 중에서 그들로부터의 성약을 맺었으니 그대와 누흐(노아)와 이브라힘(아브라함)과 무사(모세)와 마르얌(마리아)의 아들 이사(예수)로부터도 성약을 맺었노라. 그리고 나는 그들로부터 엄숙한 성약을 맺었도다. ”(꾸란 제 33장 7절)

2

‘이사’(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아담의 자손 중의 하나로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그를 사도로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에 보내셨으며 그를 통해 여러 기적을 실현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으로서의 속성( 루부비야)이나 경배 대상으로의 속성(울루히야)을 전혀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예수)는 오직 종복으로, 나는 그에게 은총을 베풀었으며 그를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모범으로 두었노라. ”(꾸란 제 43장 59절)

그리고 ‘이사’(예수)(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제쳐두고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숭배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으며 예수는 단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한 것만을 말하였습니다. “ 그대들은 나(예수)의 주님이자 그대들의 주님이신 하나님만을 경배하라”(꾸란 제 5장 117절)

3

‘이사’(예수)는 ‘마르얌’(마리아) 의 아들입니다. ‘마르얌’은 선행을 실천하는 진실된 신앙인이었으며 주님께 철저히 복종하고 경배하는 정숙하고 순결한 미혼 여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써 그녀는 아버지 없는 ‘이사’(그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를 잉태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기적으로써 그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기적은 하나님의 다른 여러 기적 중의 하나이며, 마치 아담이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창조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 보시기에 이사(예수)의 예는 아담의 예와 같노라. 그분께서는 그( 아담)를 흙으로부터 창조하셨고 그 후 그에게 ‘있어라’ 라고 말했으니 그가 있게 되더라.”(꾸란 제 3장 59절) 

4

그와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사이에는 그 어떤 사도도 없었습니다. 그는 무함마드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올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한 바 있습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마르얌(마리아)의 아들 이사(예수)가 말하니 ‘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여! 실로 나는 그대들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사도로서 나 이전의 모세오경을 확증하노라. 그리고 나 이후에 ‘ 아흐마드’(무함마드의 다른 이름)라는 이름의 사도가 올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노라.’ 그러나 그가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그들에게 도래했을 때, 그들이 말하길 ‘이것은 명백한 주술이라.’”( 꾸란 제 61장 6절)

5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실현하신 여러 기적들을 믿습니다. 예를 들어 나병환자를 고치고 장님을 보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고, 사람들이 집에서 먹는 것과 남겨 보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 모든 것은 찬미받으시고 지고하신 하나님의 허락으로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 이사’의 선지자성과 그가 가져온 메시지의 진실성을 사람들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6

‘이사’(예수)가 하나님의 종복이며 그분의 사도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의 믿음(이만)은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사’는 유대인이 묘사하는 사악한 속성과는 전혀 무관하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결백을 확증하신 바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르얌’(마리아) 의 아들 ‘이사’(예수)에 관한 진실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기독교인의 그릇된 믿음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그와 그의 어머니를 숭배하니 그들 중 일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고 다른 일부는 그에 관련하여 삼위일체를 주장합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주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십니다.

7

‘이사’(예수)는 살해당하지도 십자가에 못박히지도 않았습니다. 반대로, 유대인이 그를 살해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늘로 올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사’(예수)가 아닌 다른 자에게 그와 유사한 형상을 입히셨고 따라서 유대인은 그 자를 살해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그 자를 ‘이사’(예수)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 때문이니 ‘실로 우리는 마르얌 (마리아)의 아들, 하나님의 사도 메시아 이사(예수)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않았으며 그를 십자가에 못박지도 않았도다. 그러나 그들에게 유사하게 보였을 뿐이라. 그리고 그에 관해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실로 그에 대해 불확실해 하니 그들에게는 그에 관해 어떠한 지식도 없으며 오직 추측만을 따를 뿐이라. 그리고 그들은 그를 확실히 살해하지 않았노라. 실은 하나님께서 그를 그분께로 올리셨으니 하나님은 가장 존엄하신 분이시며 가장 현명하신 분이시라. 성서의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그가 죽기 전에 그를 믿으니 부활의 날 그는 그들에 대한 불리한 증언자가 될 것이라.”(꾸란 제 4장 157~159절)

즉,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시어 그를 그분 가까이 하늘로 올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이 가까워올 때면 그는 다시 지구로 내려와 선지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가져온 이슬람법 (샤리아)으로써 지구를 통치할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죽음을 맞이하며 무덤에 묻힐 것이며, 부활의 날 무덤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릴 것입니다. 마치 모든 아담의 자손들이 부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흙)으로써 나는 그대들을 창조하였고, 그리로 내가 그대들을 돌아가게 하며, 그곳에서 나는 그대들을 한번 더 꺼낼 것이라 ”(꾸란 제 20장 55절)

무슬림의 믿음은 ‘이사’(예수)(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가장 위대한 사도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이며, 그렇지만 그는 신이 아니며 살해당하지도 십자가에 못박히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로서, 그리고 사도로서의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 대한 믿음



  • 우리는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하나님의 종복이며 그분의 사도이며, 모든 인류의 지도자이며, 선지자들의 끝막음으로 그 이후의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였으며, 무슬림 공동체(움마)에 조언을 주었고, 하나님의 길에서 진정으로 분투하였다는 것을 믿습니다.
  • 우리가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며, 그가 명령한 것을 따르고, 그가 금하고 비판한 것을 멀리하며, 우리는 그(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의 순나(언행)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의 선지자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실로 하나님의 사도에게는 그대들을 위한 훌륭한 모범이 있으니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바라고 하나님을 많이 기억하는 자를 위한 것이라”(꾸란 제 33장 21절)
  • 우리는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 대한 사랑을 부모님이나 자식, 타인에 대한 사랑보다 우선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나, 자식,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나를 사랑할 때, 그 때서야 진정으로 믿는 자라” (‘ 알-부카리’(no.15)와 ‘무슬림’(no.44)이 수집한 하디쓰) 같은 맥락에서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들이 그(무함마드)를 따른다면 그대들은 인도될 것이라. 그리고 사도의 임무는 오직 명백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뿐이라.” (꾸란 제 24장 54절) 
  • 우리는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가져온 것을 따라야 하며 그의 순나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인도의 길을 존경과 경의로써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노라. 그대의 주님께 맹세코, 그들이 그들 사이에 논쟁하던 것을 그대에게 판결을 맡기고 그 후 그대가 내린 판결에 관해 마음 속에 불만을 느끼지 않고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때, 그 때서야 그들은 (진정으로) 믿는 자들이라.”(꾸란 제 4장 65절)
  • 그리고 우리는 그(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내린 명령을 어기지 않도 록 유의해야 합니다. 그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시련과 방황과 고통스런 벌의 원인이기 때문 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 그(무함마드)의 명령을 어긴 자 들은 그들에게 시련이 닥치거나 또는 그들에 게 고통의 벌이 닥칠 수 있음에 유의하라.” (꾸 란 제 24장 63절) 



무함마드가 받은 메시지의 독특함 :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받은 메시지에는 이전 사도들이 받은 메시지와 다른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 중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

  • 이전 사도들이 받은 메시지는 무함마드(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가 받은 메시지로써 최종 마무리됩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함마드는 그대 남성들 중의 여느 아버지가 아니라.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도이며 선지자들의 끝막음이라.”(꾸란 제 33장 40절)
  • 그(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받은 메시지와 이전 사도들의 메시지가 상충할 때, 이전의 메시지는 그의 메시지로써 폐지됩니다. 따라서 선지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도래 이후에는 그 어떤 새로운 종교도 없으며 그가 가져온 것을 따르는 것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종교입니다. 가장 훌륭한 사도인 그(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제시된 길을 따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천국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의 움마(무슬림 공동체)는 가장 훌륭한 공동체이며 그가 가져온 이슬람법(샤리아)은 가장 완벽한 법률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슬람 이외의 것을 종교로 삼길 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며 내세에서 손실자 중의 한 명이 될 것이라”(꾸란 제 3장 85절) 그리고 선지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무함마드의 영혼을 손에 쥐고 계신 분께 맹세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 나에 관해 들은 후, 사도로서 내가 가져온 것을 믿지 않은채 죽음을 맞이하였다면 그는 분명 불지옥의 거주자가 될 것이라.” (‘무슬림’(no.153)과 ‘ 아흐마드’(no.8609)가 수집한 하디쓰)
  •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받은 메시지는 ‘진’과 인류, 즉 이성을 지닌 두 종족 모두를 위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꾸란을 통해 ‘ 진’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달하고 계십니다. “ 오, 우리의 사람들이여! 하나님으로 초대하는 자에 응답하라.”(꾸란 제 46장 31절) 그리고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내가 그대를 사도로 보냄은 단지 모든 인류에게 기쁜 소식을 전달하고 경고하기 위해서라.”(꾸란 제 34장 28절) 그리고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른 선지자들이 받지 못한 여섯 가지 은혜를 받았노라 ;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와미울 칼림’(적은 단어로 깊은 뜻을 구사하는 능력)을 주셨고, 적의 마음 속에 두려움을 불어넣으시어 나를 도와주셨으며, 나에게 전리품을 허락하셨도다. 그분께서는 나를 위해 대지를 세정의 도구로 그리고 예배의 장소로 두셨으며, 나를 사도로 보내셨으니 모든 피조물을 위해서라. 그리고 나는 최후의 선지자라.” (‘알-부카리’(no.2815)와 ‘ 무슬림’(no.523)이 수집한 하디쓰)



사도들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 :


사도들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은 대단합니다만 그 중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

지고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그분의 종복에 대한 그분의 배려를 잘 알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사도들을 보내셨고 인간의 이성 하나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정보, 즉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는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내가 그대를 사도로 보낸 것은 단지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자비를 베풀기 위함이라. (꾸란 제 21장 107절)

2

이 위대한 은총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3

사도들(하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의 지위에 걸맞게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였고 그분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으며 그분의 종복들에게 조언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4

사도들이 전달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따르게 됩니다. 그 메시지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라는 것이며, 이를 따르고 실천할 때 믿는 자의 삶은 선과 인도와 행복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나의 인도를 따르는 자 있다면 그는 방황하지도 불행해하지도 않을 것이라. 그러나 나의 메시지에 등을 돌리는 자 있다면 실로 그에게는 옹색한 삶이 있을 것이라. ”(꾸란 제 20장 123~124절)


팔레스타인에 위치한 ‘아끄싸’ 성원은 이슬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아끄싸 성원은 ‘하람’ 성원 이후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성원으로서, 하나님의 사도ﷺ뿐만 아니라 나머지 선지자들( 그들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도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린 바 있습니다.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께서 무덤에 있던 사람들을 부활시켜 각자의 행위에 따라 그들을 심판하고 보응하시며, 그에 따라 천국의 거주자는 천국에서 영원히 거주하고 지옥의 거주자는 지옥에서 영원히 거주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은 이만(믿음)의 여러 필수요소들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 없이는 이만이 성립할 수 없습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나 신앙이란 하나님을 믿고 최후의 날을 믿는 것이라”(꾸란 2장 제 177절)



왜 꾸란은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가?



꾸란은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꾸란은 기회가 날 때마다 그에 대한 믿음을 상기시키고, 다양한 아랍어 표현법으로써 최후의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으며, 여러 문맥을 통해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필연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찬미받으시고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믿음에 대해 공평한 보상을 내리십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

실로 하나님께서는 부당행위나 악한 자를 반드시 응징하시며, 부당하게 다루어진자를 반드시 정의로써 대우하시며, 선행을 행한 자에게 반드시 합당한 보상을 내리십니다. 그분께서는 권리를 지닌 자의 권리를 실현시켜주십니다. 우리는, 이 현세에서 악한 자로 살다가 악한 자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응징을 받지 않는 경우를 보며, 부당하게 다루어진 자가 그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여 그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부당행위를 방치하시지 않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현상이 뜻하는 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세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삶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곳에서는 약속이 있으니, 선행을 실천한 자는 그의 행위로 보상을 받으며 악행을 실천한 자는 그의 행위로 엄벌을 받아 결국 권리를 가진 자의 모든 권리가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은 타인에 대한 친절로써 -그것이 비록 타무르(대추야자 열매)를 반쪽으로 나누어먹는 것일지라도 -불지옥을 멀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은 무엇을 내포하는가?



최후의 날에 대한 무슬림의 믿음은 다양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부활과 집결에 대한 믿음 : 무덤에 있던 고인의 몸에 다시 영혼이 불어넣어져 그가 부활할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며 처음 창조될 때의 모습처럼 맨발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하나의 장소에 집결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꾸란과 순나, 이성과 순수한 창조본성(피뜨라)이 그 근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덤에 있던 고인을 부활시키실 것이며 죽어있던 우리의 몸에 다시 영혼이 불어넣어져,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 그대들은 그 후에 실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그런 후 그대들은 부활의 날에 부활할 것이라. ”(꾸란 제 23장 15~16절)

하나님의 모든 성서들은 부활의 날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부활의 날에 담겨있는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약속을 하셨으니, 그분의 사도들이 우리들에게 제시한 경배 행위에 관해 우리는 정당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장난으로 창조하였다고 생각했던가? 그리고 너희들이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가?”(꾸란 제 23장 115절)


꾸란이 제시하는 부활에 관한 증거 :

  • 실로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로 인류를 창조하셨으며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가능한 그분이시기에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그분께서는 창조를 시작하시는 분이시며 그런 후 그것(창조)을 반복하실 것이라”(꾸란 제 30장 27절) 썩어버린 뼈다귀에 어떻게 다시 생명이 부여될 것이냐고 비웃는 자에 대해,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말하라 (오, 무함마드여!) : ‘처음에 그것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라. 그리고 그분은 모든 창조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라.’”(꾸란 제 36장 79절)
  • 푸른 나무가 설 수 없었던 불모의 대지였지만 비가 내려 다시 생명력 가득한 푸르른 대지가 되니 그곳에 아름다운 목초가 가득합니다. 이처럼 죽어 있던 대지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그분께서는 마찬가지로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것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로부터 축복의 비를 내리어 그것으로써 정원과 수확 가능한 곡물을 자라게 하노라. 또한 높이 뻗은 대추야자 나무를 자라게 하니 그것에는 갓 맺은 주렁진 열매가 있도다. 종복을 위한 양식이라. 그리고 그것으로써 죽어 있던 땅에 생명을 불어넣으니, 부활도 그러할 것이라. ”(꾸란 제 50장 9~11절) 
  • 아주 힘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존재가 그보다 쉬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성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지 쉽게 알고 있습니다. 찬미받으시고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묘하고 광대한 하늘들과 땅과 별들을 창조하셨고 그 안에 또 다른 놀라운 피조물들을 두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에게는 썩어버린 뼈다귀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신 분께서 그와 비슷한 것들을 창조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노라! 그분은 위대한 창조자이시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이시라.”(꾸란 제 36장 81절)



2

심판과 행위저울에 대한 믿음 : 하나님께서는 현세에서의 행위에 의거하여 피조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를 따른 자, 그의 심판은 쉬울 것이며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고 죄를 지은 자, 그의 심판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위대한 저울에 놓일 것입니다. 한쪽 접시에는 선행이 놓이며, 다른 쪽 접시에는 악행이 놓일 것입니다. 선행의 접시가 악행의 접시보다 무거우면 그는 천국의 거주자가 될 것이며, 악행의 접시가 선행의 접시보다 무거우면 그는 지옥의 거주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 누구도 부당히 대우하시지 않으십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부활의 날을 위해 공평의 저울을 놓을 것이니 그 어떤 이의 그 어떤 것도 부당히 다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그리고 겨자씨의 무게만한 것이 있더라도 나는 그것을 가져올 것이니 계산자는 나로써 충분하노라. ”(꾸란 제 21장 47절)

3

천국과 불지옥 : 천국은 영원한 기쁨의 장소이며 믿는 자와 경외하는 자,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를 따르는 자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곳입니다. 그 곳에는 자아가 욕망하는 모든 것들이 주어지며 원하는 모든 것이 있기에 우리는 영원한 기쁨을 누립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는 그분의 종복에게, 그분께 대한 지체없는 복종을 통해 천국에 들어갈 것을 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천국의 너비는 하늘과 땅의 너비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들 주님으로부터의 용서와 천국을 얻기 위해 서두르라. 그 너비는 하늘들과 땅의 너비이며 경외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라.”(꾸란 제 3장 133절)

반면 불지옥은 영원한 엄벌의 장소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분의 사도들을 거역하는 자들을 위해 그분께서 준비하신 곳으로 그곳에는 인간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여러 종류의 벌과 고통과 징계가 있습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는 불신자를 위해 준비된 불지옥에 대해 경고하시면서 그분의 종복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불( 지옥)을 두려워하라, 그곳의 땔감은 사람들과 돌들로, 불신자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라.”( 꾸란 제 2장 24절)

오, 하나님! 실로 저희들은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저희들에게 천국을 주시옵고 천국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말과 행동을 주십시오. 저희들을 지옥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시고 지옥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말과 행동으로부터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십시오.

4

무덤에서의 벌과 기쁨 : 우리는 죽음이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하라(오, 무함마드여!) : ‘너희들에게 지정된 죽음의 천사가 너희들을 거두어갈 것이라. 그런 후 너희들의 주님께로 너희들은 돌아갈 것이라.’ ”(꾸란 제 32장 11절)

죽음은 우리가 주위에서 많이 보아온 것이며, 죽음이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또한, 자연사를 맞이한 자나 살해당한 자나 죽음의 이유가 무엇이든 그 모두는 정해진 시간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들의 기한이 도래했을 때 그들은 조금도 늦추어지거나 앞당겨지지 않을 것이라.”( 꾸란 제 7장 34절)

•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맞이한 자는 이제 그가 내세의 영역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 불신자와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는 무덤에서의 벌이 있고, 믿는 자와 선행을 실천한 자에게는 무덤에서의 기쁨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의 여러말씀(하디쓰)을 통해 확증된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를 믿으며 이에 관해 ‘어떻게?’ 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우리 이성은 무덤에서의 벌과 기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천국과 불지옥의 경우처럼 보이지 않는 영역에 속하며 관찰 가능한 영역 밖의 일입니다. 유추나 논증, 판결 등의 사고력은 이론과 법칙 도출이 적용될 수 있는 현세의 관찰 가능한 세계에 한정됩니다.

• 마찬가지로 무덤에서의 양상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 속하며 우리의 감각이 도달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만약 우리의 감각으로 인지 가능했더라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의 유용성이나 지혜가 사라져버렸을 것이고 사람들이 고인을 무덤에 묻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무덤에서 듣는 소리를 그대들도 듣는다면 그대들은 고인을 무덤에 묻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그것만 아니었다면 나는 하나님께 그대들이 무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라.”(‘무슬림’(no.2868) 과 ‘안-나사이’(no.2058)가 수집한 하디쓰) 이러한 지혜는 동물에는 적용되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동물이 무덤에서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 :


1

우리가 꾸준히 선행을 실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기심과 ‘리야’(남에게 보이기 위한 경배행위)를 멀리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는 믿음은 바로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꾸란에서는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과 선행이 동시에 언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고하신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원을 관리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믿는 자여야 하노라.” (꾸란 제 9장 18절) 또 다른 그분의 말씀입니다. “최후의 날을 믿는 자들은 그것(꾸란)을 믿으며 그들은 그들의 예배에 있어 꾸준하더라.”(꾸란 제 6장 92절)

2

부주의한 상태로 현세의 일로만 바쁜 자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여, 그들이 경배에 있어 서로 경쟁하고 하나님 경배를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합니다. 현세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며 내세야말로 영원한 거주지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꾸란을 통해 사도들의 선행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을 이러한 선행으로 이끈 이유가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나는 그들을 선별하였으니 진실성으로 내세만을 떠올렸기 때문이라”(꾸란 제 38절 46절)

즉, 그들의 선행의 이유는 그들이 항상 내세만을 떠올렸기 때문이며 내세를 기억하였기에 그들이 그러한 선행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부 무슬림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힘들다고 느꼈고 그분께서는 그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대들이 내세가 아닌 현세의 삶에 기뻐하였단 말인가? 그러나 현세의 삶의 향락은 내세에 비하면 작은 것에 지나지 않노라.“ (꾸란 제 9장 38절)

따라서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을 지닌다면 우리는, 현세의 모든 기쁨은 내세의 기쁨과는 결코 비교될 수 없는 것임을 굳게 믿게 됩니다. 내세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현세의 고통도 감내할 만큼 그 기쁨은 커다란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길에서 겪는 현세의 모든 고통은 내세의 고통과는 비유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믿게 됩니다. 내세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현세의 기쁨도 포기할 만큼 그 고통은 커다란 것입니다.

3

모든 이는 결국에는 자신의 몫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됩니다. 현세 삶의 향락 일부가 사라졌다고 해서 체념하거나 슬픔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선행을 실천한 자의 보상을 절대로 져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확신으로 우리는 더욱 분발하게 됩니다. 누가 강제로 혹은 사기를 당해 아주 조그만 것이라도 잃었다면 그는 부활의 날에, 즉 가장 절실한 시기에 그것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리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신의 권리를 되찾게 될 것이라는 아는 자가 어떻게 슬퍼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와의 논쟁을 심판하실 분이 가장 공정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자라면 어떻게 그 논쟁으로 슬퍼할 수 있을까요?



운명에 대한 믿음



운명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모든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하나님의 판결과 그분의 운명에 의한 것이며, 그분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며, 그 모든 것은 그분의 의지에 의한 것이며, 그 어떤 것도 그분의 의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세상의 어떤 것도 그분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그분의 결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종복들에게 명령하시고 금지하시며,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시험받으며, 그들의 행위는 강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과 의지에 따른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그들의 능력을 창조하셨으며, 그분의 자비에 따라 원하는 자를 인도하시며, 그분의 지혜에 따라 원하는 자를 방황시키시며, 그분은 질문받지 않으시며 도리어 그들이야말로 질문받을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운명에 대한 믿음은 이만(믿음)의 필수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지브릴’(가브리엘) 천사(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가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믿음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과, 그분의 성서들과, 그분의 사도들과, 최후의 날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운명을 믿는 것이라.” (‘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8)



운명에 대한 믿음은 무엇을 내포하는가 :


운명에 대한 믿음은 다음 네 가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

  •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세부적으로 알고 계시며, 지고하신 그분께서는 창조하시기 전에 창조될 존재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들의 양식과 나이와 말과 행위와 움직임과 정지함과, 그들이 숨기는 것과 드러내는 것을 알고 계시며, 그들 중 누가 천국의 거주자이며 누가 불지옥의 거주자인지 알고 계시다는 믿음을 내포합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 그분 이외에는 경배 받을 존재가 없노라.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을 아시는 분.” (꾸란 제 59장 22절)
  •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알고 계신 모든 것을 ‘보존 서판’(알-라우흐 알-마흐푸드)에 적으셨다는 믿음을 내포합니다. 그 증거는 지고하신 그분의 다음 말씀입니다. “대지에서나 그대들에게 닥친 모든 시련은 내가 그것을 만들어내기 이전에 이미 ‘보존 서판’(알-라우흐 알-마흐푸드)에 기록되어 있으니”(꾸란 제 57장 22절) 그리고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의 말씀 역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기 오만년 전에 모든 피조물의 운명을 기록하셨노라.”(‘무슬림’이 전하는 하디쓰, no.2653)
  • 그 어떤 것도 감히 되돌릴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의지와, 그 어떤 것도 감히 거부할 수 없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내포합니다. 따라서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절대 의지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 의한 것이며, 그분께서 원하면 있고 그분께서 원하지 않으면 없습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원하실 때만이 그대들이 원하게 되노라.”(꾸란 제 81장 29절)
  • 찬미받으실 그분이야말로 모든 존재를 있게 하신 분이시며, 그분은 유일한 창조자이시며 그분 이외의 것은 피조물이며, 그분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라는 믿음을 내포합니다. 찬미받으시고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니 모든 것을 완벽히 조절하셨도다.”(꾸란 제 25장 2절)



인간은 선택하며 그에게는 능력과 의지가 있습니다.



운명에 대한 믿음은, 우리에게 행위에 대한 선택권과 의지 및 능력이 있다는 사실과 상충하지 않습니다. 이슬람법(샤리아)과 실제 현상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법(샤리아)적 근거는,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의지와 관련하여 하신 다음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날이라. 그러니 원하는 자 있다면 그의 주님에게로 귀착지를 두라. ”(꾸란 제 78장 39절)

능력에 관련하여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능력(우스으) 이상의 것을 짐지우지 않으시니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그가 얻은 것이며 그에게 해가 되는 것은 그가 저지른 것이라.” (꾸란 제 2장 286절) ‘우스으’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현상적 근거는,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의지와 능력이 있으며 그에 의거하여 행위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지에 의해 일어난 일 – 예를 들어 걸음을 걷는 것 – 과 의지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일 – 예를 들어 발을 헛짚거나 넘어지는 것 – 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도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 능력은 지고하신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 지고하신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 중 올곧은 길을 걷고자 하는 이를 위한 것이라.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원하실 때만이 그대들이 원하게 되노라.”(꾸란 제 81장 28~29) 인간의 의지는 존재하지만 그것은 찬미받으시고 지고하신 하나님의 의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지고하신 하나님의 소유이고 그분께서 소유한 그 어떤 것도 그분의 지식과 의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로 나는 그에게 길을 인도하였으니 감사하는 자가 되거나 불신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 (꾸란 제 76장 3절)



운명을 변명으로 삼는 행위 :



명령과 금지는 인간의 능력과 선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선행을 실천한 자는 인도의 길을 선택하였기에 보상을 받는 것이며, 악행을 저지른 자는 방황의 길을 선택하였기에 벌을 받는 것입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능력 밖의 것을 짐지우지 않으시며 만약 경배 행위를 실천하지 않은 자가 운명을 변명으로 삼는다면 그분께서는 그의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거역 행위를 하기 전에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어떤 운명을 지정해놓았는지 알지 못하기에 그의 변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에게 능력과 선택권을 주셨고 그를 위해 선과 악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가 거역했다는 것은, 그가 경배 행위를 제쳐두고 거역 행위를 선택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는 그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공격하여 재산을 빼앗고 해를 입힌 후에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운명지은 행위’라면서 그가 변명을 한다면 우리는 그의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를 벌하고 우리의 권리를 되찾으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는 그의 선택이자 의지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명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 :


운명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운명은 하나님의 기쁨을 얻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의탁을 명령받은 동시에, 원인이 되는 행위(‘사밥’)를 실천할 것을 명령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인이 되는 행위(‘사밥’)의 결과물은 오직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원인이 되는 행위를 창조하시고 결과를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에게 유익한 것을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라. 그리고 체념하지 말라. 그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만약에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이러이러했을 텐데…” 라고 말하지 말라. 대신 이렇게 말하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운명이며 그분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행하십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만약에’라는 단어를 시초로 그의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라.” (‘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2664)

2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게 되며 따라서 거만해하지도 오만을 떨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지정된 운명이 무엇인지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허약함과 언제나 우리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일이 생기면 거만해하고 자기만족에 빠지며, 나쁜 일이나 시련이 생기면 걱정하며 슬퍼합니다. 그 어떤 인간도 좋은 일이 생겼을 때의 거만함과 나쁜 일이 생겼을 때의 슬픔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운명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만은 예외입니다. 모든 발생한 일은 운명에 의한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일을 알고 계십니다.

3

악의 감정인 시기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누군가에 선사한 것을 시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이고 그분께서 운명지으신 것이기에, 만약 그것에 대해 누군가를 시기한다면 이 시기의 감정은 하나님의 운명에 역행하는 것임을 믿는 자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운명에 대한 믿음은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단호한 의지를 키워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명과 양식은 운명에 의해 정해져있고 우리가 겪는 모든 것은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5

운명에 대한 믿음은 믿는 자의 내면에 참된 믿음(이만)의 실체를 심어줍니다. 즉, 그는 항상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분께 의탁하며 원인이 되는 행위(‘사밥’)를 실천합니다. 또한 그는 항상 주님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분께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합니다.

6

운명에 대한 믿음은 내면에 평온함을 심어줍니다. 왜냐하면, 일어날 것으로 운명된 것은 반드시 일어나며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운명된 것은 반드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